시
다만 걷겠습니다
수지 문지기
2022. 1. 26. 11:31
제 눈은 풀려가고 있습니다. 감각은 희미해지고
소리는 약해지고 있습니다. 세상 가득한 적막 때문에
무엇이 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저는 걷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그곳에 닿으면
알 수 없는 행복이 있을 거라 믿으며
발 옮기고 있습니다.
저는 점점 아득해집니다.
이제 멈추면 될까요? 이제는 포기해도 될까요?
생각하니 편해지고 또 슬퍼집니다.
멈추면 무엇을 할까요? 항상 걸어왔던 삶인데.
멈추면. 그만두면. 저도 사라지는 거 아닐까요.
저기까지만 가보자.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내가 지금 숨쉬기 위해서.
저기까지만 가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걷기 밖에 없어서.
그렇게 걷다 보면
결국 '저기'에는 닿지 못해도
저는
자연스레 멎어 무섭지 않게 사라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