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새벽과 아침 사이에서

수지 문지기 2022. 3. 6. 06:55

3시 30분에 깼다.

 

정식으로 잠든 적이 없는데 졸았나 보다. 저녁 대신 라면과 만두 그리고 딸기를 먹었고 그 후는 생각나지 않는다. 애매하다. 생각도 몽롱하고 시간은 새벽과 아침에 걸쳐있다. 5시만 되었어도 뛰러 나갈 텐데 지금 달리는 건 미친 짓 같아 방에 있는다. 넷플릭스를 켜고 오래된 애니메이션 시티헌터를 보았다. 그 만화를 처음 본 게 20년 전인데 주인공은 여전히 21살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부러운 놈이다. 나이도 그대로고 주변에는 미인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꺼버렸다. 뭘 해야 하나? 거실로 나가니 김이나의 작사법이란 책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를 젖힌 채 검은 물방울 반점이 있는 흰색 셔츠를 입고, 그보다 빛나는 피부를 가진 작가 사진이 보였다. 40대라고 하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면 32살 같기도 했다. 김이나는 가사도 잘 쓰는데 예쁘기까지 하다. 하지만 부러운 감정은 들지 않는다. 재색을 겸비한 작사가가 있어 우리나라가 아름다워졌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녀 옆에는 삼성전자에서 보내온 제53기 정기주주총회 안내문이 있다. 앞으로는 ESG 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소집통지를 전자공고로만 송달한다고 한다. 종이만 아끼지 말고 물려있는 수익률이나 올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쓰다 보니 알게 된 건데 내 마음에는 분노가 많다. 특히 부러움에서 파생된 분노는 나를 비참하게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6시 43분이 되었다. 이제 씻고 달리러 간다. 안국역 근처 런던 베이글 뮤지엄 앞에서 러닝 크루를 만나기로 했다. 아마 경복궁을 2바퀴 돌고 한잔하러 갈 것이다. 우리는 먹기 위해 뛰는 불량 러너이니까.

 

일요일 아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