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간 실격 - 세상에 대한 정의
세 번째 수기
호리키는 그날 도회지 사람으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타산적인 약삭빠름입니다.
"볼일이라니, 뭔데?"
"이봐, 이봐. 방석 실을 끊지 말게."
호리키는 자기네 집 물건이라면 방석 실 하나도 아까운지 겸연쩍은 기색도 없이 그야말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저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호리키는 지금까지 저하고 교제하면서 무엇 하나 잃은 적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제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것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납하지 않는 거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그때 이후로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전보다는 다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자기 생각이 절대적 진리인양 주입시키는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하지. 어릴 때는 경험과 지식이 없어서 상대의 말 한마디에 위축되고, 무슨 뜻 일까 깊이 고민한 적도 많았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지 하고 싶은 말을 좀 더 숭고한(상위) 개념을 빌려서 이야기하더라고. 예를 들면, "올해 회사 전략에 따라 최대리는 xx을 해야 해", "업무를 바꿀 때가 되었어. 요새는 멀티 인재가 필요하다고" 등을 말하는 상사가 있었는데, 허울 좋은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 자기 원하는 대로 날 쓰기 위함이었지. 그때 깨달았어. 세상은 없고 상대의 욕망만이 존재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