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과 단상
사양 - 삶으로 부터 해방
수지 문지기
2022. 9. 1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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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아침, 나는 무서운 것을 보고 말았다. 어머니의 손이 부어 있었다. 이런 손은 어머니의 손이 아니다. 낯선 아주머니의 손이다. 내 어머니의 손은 훨씬 가늘고 자그마한 손이다. 내가 잘 아는 손. 부드러운 손. 귀여운 손. 그 손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신문에 폐하의 사진이 실린 모양인데, 한 번 더 보여주렴."
나는 신문의 그 부분을 어머니 얼굴 위에 펼쳐 들었다.
"늙으셨구나."
"아니에요, 사진이 안 좋아요. 지난번 사진에는 아주 젊고 쾌활해 보였어요. 오히려 이런 시대를 기뻐하시겠죠."
"어째서?"
"그야, 폐하도 이번에 해방이 되셨잖아요."
어머니는 쓸쓸히 웃으셨다. 그러고는 잠시 후,
"울고 싶어도, 이제 눈물이 안나."
나는 지금 어머니가 행복한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극한을 지나 아스라이 신기한 불빛을 보는 기분. 이런 게 행복감이라면 폐하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분명 지금, 행복한거다.
모두를 배웅하고 나서 방으로 가니, 어머니가 늘 내게만 지어 보이는 다정한 미소로,
"바빴지?"
다시 속삭이듯 낮게 말했다. 그 얼굴은 생기가 넘쳐 오히려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삼촌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던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아니에요."
나도 조금 들뜬 기분으로 방긋 웃었다.
그리고 이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