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준비의 명약 정신승리 (뇌의 오류)
2022년 9월 26일 맑음 (정신상태 맑음, 콧물 있음)
오랜 친구에게 비굴한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S/W 자격시험 기출문제 있어? ^^;"
아, 사람이 몰리면 품격이고 자존심이고 사라진다더니, 내가 그렇게 비웃던 중국인 수험생처럼 시험후기를 찾아 헤매고 있구나. 이런 비굴함은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 신님, 동물과 식물,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나의 파멸을 원하는 듯, 나는 지난번 시험에 떨어져 버렸다. 그것도 얼빵한 중학생이나 할 초보적인 실수(차마 적기도 부끄러운)를 해서 3개월의 노력을 날려버렸다.
나는 안다. 이런 대 실패뒤의 도전은 허무하게 끝난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망하는 흐름 위에 있어서 정석으로는 합격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요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10년 만에 환하게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친구에게 구걸을 했던 것이다. 그가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다는 상태 정보가 뜨자 꿀꺽 침을 삼키며 희망의 동아줄이 내려오기를, 평소 믿지 않는 신님에게 기도하며 모니터를 쳐다봤다.
"오래전에 합격해서 지금은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아, 불긴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더니, 내 삶은 요행도 없어서 회사에서 가지고 있던 일말의 프라이드도 사라질 운명에 처해서, 임원과 파트장 그리고 동료라고 불리우는 사람에게 "그럼 그렇지.."라는 조소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사뭇 죄송하고 몸 둘 바가 없는 패배자의 얼굴로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모습이 자동으로 그려졌다. 루저. 운명이 정해진 암소가 된 것이다. 이제 친구와의 채팅은 필요 없어서 무의미한 이야기를 끝내려는 순간,
"너무 오랜만에 프로그래밍해서 감이 없었던 거 아닐까?"
"다음 시험에서 또 떨어진다는 건 상상이 안된다."
"내가 아는 너는 당연히 합격할 수 밖에 없어. 기출문제없어도 돼."
라고 친구가 말했다.
오잉?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친구는 나의 합격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었다. "애가 멀 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있는데 불현듯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역시 그런 건가? 나에겐 나도 모르는 능력이 있어서,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그 힘이 발휘되어, 우주의 모든 저주를 사뿐히 즈려밟고 우아하게 승리하는 게 정해진 운명이다. 그래 이건 제3자가 객관적으로 말한 거니 틀림없어. 9회 말 무사 만루에 구원 등판한 에이스처럼 세 타자 모두 삼진 잡고 마운드에서 내려올 거야. 내 승리는 이미 확정되었어!"라는 생각이 들며 히히 웃음이 나왔다.
곧바로 밀려오는 쪽팔림.
아.. 자중해야 하는데 또 정신승리를 해버렸다. 이렇게 유치한 망상을 일삼으니 시험장에서도 어린애 같은 실수를 하는 걸까? 어른 흉내를 내고 있지만 속 마음은 끝없이 요동치고 있다. 시험에 압도될까 두려워 오래된 약을 처방전도 없이 꺼내 먹는 나는, 겁 많고 늙은 소년인 게 확실하다.
신님, 왜 저를 끝없는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