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패배를 인정합니다

수지 문지기 2022. 10. 10. 20:39

2022년 10월 10일 (쌀쌀한 비, 마음 우울)

S/W 자격시험 최종 탈락. 보기 좋게 실패했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패배라 오히려 홀가분 한 기분이 들어.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어.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기."

내게도 행운이 있는지 시험해보았어. 지나간 모든 성취는 나를 갈아 넣는 노력이 필요했고, 목표 달성 후에는 허무함만 몰려왔어서, 이번만큼은 일상의 행복과 결과를 함께 달성하고 싶었어. 방긋 웃는 여유를 유지한 채 말이야. 하지만 역시 망상에 불과했지. 세상은 단칼에 "안돼. 그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나를 수렁으로 던지려 해.

그래. 나도 알아. 모든 사람이 자기를 뛰어넘으려 노력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데, 나처럼 설렁설렁해서는 무엇도 해낼 수 없겠지. 사실 나 최선을 다할 수 있었지만, 다음에도 같은 노력을 해야 한다 생각하니 슬퍼지고, 이런 게 끝없이 이어지는 게 삶이라면 숨이 막힐 것 같아 성실함에서 거리를 둬본 거야.

눈물이 나진 않아. 비굴하게 기회를 더 달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패배를 인정합니다. 뜻대로 하시지요."라고 말하며 처분을 기다릴 뿐이야. 나는 아마 마녀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탐욕이 가득한 마케팅 부서 여자에게 팔려 갈 것 같아. 그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를 조리돌림 하겠지. 그러면 나는 고통 속에서 "아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아쉬워하겠지만, 사실 진정한 후회는 아니야. 코딩 시간을 줄여서 좋아하는 작가(다자이 오사무) 책을 보고 노트에 필사하는 게 참 즐거웠거든. 충실히 초심을 지킨 것 같아 후회는 없어.

언제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할까?
정말 멈추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잘 모르겠어. 다만, 마음속 깊이 *영원히 달릴 순 없어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아.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마지막 문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