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3

예술은 쌓이는게 아니다

나는 노인에게 감탄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해 질 녘 공중목욕탕의 세면장 한구석에서 혼자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보니까, 허술한 일본식 면도날로 수염을 깎고 있다. 거울도 없이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침착하게 깎고 있다. 그때만큼은 신음소리가 나올 정도로 감탄했다. 수천 번, 수만 번이라는 경험이 노인에게 거울도 없이 손으로 더듬어 가며 얼굴의 수염을 수월하게 깎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렇게 쌓여 온 경험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이길수 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한 뒤로 주의 깊게 살펴보니, 예순이 넘은 집주인 할아버지 역시 뭐든지 모르는 게 없다. 정원수를 옮겨 심는 계절은 장마철이 최고라는 둥, 개미를 퇴치하려면 이래야 한다는 둥, 대단히 박식하다. 우리보다 마흔 번..

명문과 단상 2023.03.12

당신 아름답게 피지 마세요

꽃 같은 당신 활짝 피지 않고 봉우리 져 있어요 남들은 볼 수 없게 곁에 있는 저만 알 수 있게 아름다움을 가려 주세요 기어코 피어야 겠다면 밤에만 피는 달맞이꽃이 되어주세요 향기도 색도 없는 조화처럼만 있어주세요 당신 결국 피었군요 누구보다 붉은 장미로 태양과 함께 웃고 있네요 저기 벌들이 오네요 아주 많은 벌때가 다가옵니다 이제 꽃잎은 필요 없네요 저는 떨어집니다 그리고 사라집니다 안녕

편린 20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