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오사무 6

사랑할 자격은 영원하다

자신이 아직 남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우쭐거릴 수 있는 동안은 삶의 보람도 있고, 이 세상도 즐겁습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자신이 남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분명히 자각한다 해도, 사람은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남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해도, 남을 '사랑할 자격'은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겸허는 사랑하는 기쁨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받는 기쁨만을 바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야만적이고 무지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낭만등불)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기에 나도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그래서, 가치있는 인간이라고 외치고 싶은거 아닐까.

명문과 단상 2023.02.28

3월 13일 (중학생의 권태)

3월 13일 맑음 또, 일본 누드 잡지를 가져다 내게 내민다. 시시하다. 여자 몸을 보며 떠드는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인데, 친구들은 그걸 알지 못한다. 나는 벌써 중학교 2학년, 14살이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색시를 얻어 장가갈 나이이다. 어엿한 어른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즐겨했던 놀이도 땅기지 않는다. 인목이와 NBA 농구를 흉내 내던 것도, 미용실 여자아이와 몰래했던 검은 별 놀이도 이제 흘러간 추억이 되었다. 어제는 철환이가 집에 찾아와 한참 동안 날 불렀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홀로 조용히 사색하며 등교하고 싶었으니까. 확실히 2학년이 되자 많은 게 변했다. 작년 겨울 12cm 넘게 크면서 세상을 내려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딴또'라고 놀려대던 애들도 이젠 날 존경으로 대한다...

중2 일기장 2023.01.05

인간, 다자이 내 마음의 문장들

어른이란 외로운 사람이다. 서로 사랑하고 있어도 조심하면서 남남처럼 서먹서먹하게 대해야 한다. 어째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보기 좋게 배신을 당해 큰 창피를 겪은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이 발견은 청년이 어른으로 옮겨가는 첫 번째 과정이다. 어른이란 배반당한 청년의 모습이다. (쓰가루) '인간은 왜 서로를 평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걸까.' 이런 소박한 의문에 대해 느긋하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한다. '모래밭의 싸리꽃도, 기어가는 작은 게도, 강가에 쉬는 기러기도, 그 무엇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인간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을 서로 존경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

명문과 단상 2022.11.21

믿어서 행복에 도달한다

죽음을 이웃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보다도, 한 송이 꽃의 미소가 더 몸에 사무친다. 우리는 지금, 말하지면 아스라한 꽃향기에 이끌려 정체 모를 큰 배에 실려 하늘의 항로를 따라 되는데로 몸을 맡긴 채 나아가고 있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그 배가 어느 섬에 다다를지, 그건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항해를 믿어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은 이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할 열쇠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죽은 자는 완성되고, 산 자는 출범하는 배의 갑판 위에 서서 죽은 자에게 합장한다. 배는 스르르 바닷가에서 멀어진다 (다자이 오사무 - 판도라의 상자) 마음을 다해서 거짓없이 하루를 살고 싶다.

명문과 단상 2022.10.05

오롯이 버텨야 할 때

여행을 잘하는 사람은 생활에서도 절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여행이 서투른 사람이 여행하는 동안 가장 쩔쩔맬 때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머무는 시간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생에서 몇 시간 동안 '내려와 있는' 상태이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차 안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그래도 끝내 견디지 못해 차에서 내려 자기 힘으로 가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소위 '여행을 잘하는' 사람은 차를 타고 있는 동안, 즐긴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간 동안 마음을 비울 수는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굉장한 말로 표현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능력이다. 사람들은 이 능력에 전율을 느끼기에는 무척이나 둔하다. 움직임이 있는 것, 그것은 세상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종종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명문과 단상 2022.10.02

사양 - 아무 일도 없었다

2 작년엔 아무 일도 없었다. 재작년에도 아무 일 없었다. 그 전해에도 아무 일 없었다. 이런 재미있는 시가 전쟁이 끝난 직후 어느 신문에 실렸는데 지금 떠올려도 참으로 온갖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역시나 아무 일 없었던 것도 같다. 나는 전쟁에 관한 추억은 이야기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다. 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진부하고 지루하다. 18년 간 몇 번의 이사를 하고 차와 집을 사고 적지 않은 연인을 만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물질적 풍요로움은 금방 익숙해져서 처음부터 이 상태였던 것 같고, 가족을 꾸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의 기쁨과 의무감도 알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몸이 쇠약해진 것만 빼곤 근본적으로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아.. 약해진다는 게 돌이킬 수 없는..

명문과 단상 202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