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9

크리스마스 10년 간의 기록

어느 크리스마스 날에.. 저는 어떤 모습일까요? 혼자일까요, 함께일까요. 쓸쓸할까요, 이제 평안에 닿았을까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앞날을 생각하기 전에 과거를 먼저 돌이켜봅니다. 사진첩을 꺼내 12월 24~25일에 촬영된 사진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10년간의 기록을 정리해 봤습니다. * 혼자 떠난 여행 - 4회 * 아무 기록 없음 - 3회 * 친구와 홈 파티 - 1회 * 글쓰기 - 1회 * 썸녀와 콘서트 - 1회 아.. 정말 무색무취한 날의 연속입니다. “여자 친구는 떠나고, 친구들은 바빴고, 저는 혼자 해외로 향했습니다”. 10번의 크리스마스가 한 문장으로 깔끔히 정리됩니다. 여행지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나? 저를 촬영한 사진은 없지만 도로, 건물 사진을 보며 떠올려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

에세이 2022.12.23

홀로 떠나는 통영 버스 안에서

11월 11일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밤 11시 정각. 나는 통영으로 향한다. 벌써 세번째 방문. 똑같은 네 시간의 여행이 펼쳐질 것이다. 같은 길을 지나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골 마을에 도착. 그리고 첫 마을버스가 올 때까지 허름한 터미널을 서성이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6년 전 그리고 10년 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창밖의 어둠이 흩어지길 기다릴 것이다. 출발 10분전. 편의점에 들러 차가운 생수와 뜨거운 캔 커피를 산다. 생수는 단지 목마름을 위한 예방약. 어지간해선 마시지 않는다. 손끝으로 뚜껑을 잡아 곧바로 가방에 넣은 후, 긴 여행에 온기를 줄 커피를 입에 담아 차에 오른다. 버스엔 사람이 가득하다. 가장 구석진 자리까지 둘러 앉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해댄다. 이상한 일이다..

에세이 2022.10.31

오늘 하루도 위선자가 되어

위선이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선생님을 속이고 지금은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사랑받는 것, 구체적으로 말해 사람들이 제게 주는 관심은 삶의 이유였습니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거리에서 주운 돈을 경찰서에 돌려주며 다리 다친 친구 가방을 들어줬던 것 모두 관심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에게 멋쩍게 웃으며 별일 아니라고 말했지만 귀는 항상 그들의 대화를 쫓았습니다. 아! 당신의 혀 위에서 저를 끝없이 씹어주세요 따위의 저질스러운 생각이 가득했고 배려 없는 에티켓을 익혔고 또 무언가 착한 척을 하였습니다. 사랑에 중독된 저는 충실한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며 상대가 원하는 이야기를 쏟아 내고 이를 위해 다양한 것을 배웠습니다. 성경을 정독해서 여름 성경학..

편린 2022.07.20

나를 관조하다(4)

4. 추해지지는 않는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친한 친구에게 마저 본모습을 감추는 내가 우스웠다. 마포대교를 뛰어온 다리는 물에 젖은 듯 무겁고 피로해진 나는 벤치에 앉았다. 공원을 산책하던 가족 그리고 연인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 내며 내 앞을 가로질러갔다. 하지만 나와는 무관한 백색 소음에 불과했고 군중의 웅성거림 속에서 순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적막뿐이다. 산책하는 사람도 대교를 달리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슬에 젖은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황급히 일어나 오피스텔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이곳에 온 이유도 잊어버린 채 외로운 감정이 사치였던 듯, 단지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길고양이처럼 움직였다. 서강대교를 건너기 전 편의점에 들러 따..

에세이 2022.07.12

나를 관조하다(3)

3.거짓말쟁이 여의도 한강공원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I SEOUL U"라는 문구가 보인다. "나는 너를 서울 한다?". 처음 봤을 땐 감각 없는 공무원이 멋대로 만든 슬로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볼수록 매력적이다. "SEOUL"이란 단어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데 누군가 박살내고 싶을 때는 Hate, 무시하고 싶을 때는 Ignore, 좋아할 때는 Like 등을 집어넣고 편한 대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 사람의 혼재된 감정을 담는 그릇 같다고 할까. 오늘 내 마음에 들어온 "SEOUL"은 Miss 인 것 같다. 혼자서 휴직을 결정하고 이사하고, 또 홀로 걷는 나는 사람이 그립다. 괜한 생각을 해서 기분이 다운된다. 발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으면 이대로 축 쳐질 것 같다. 하지만 ..

에세이 2022.06.27

나를 관조하다(2)

1. 자기부정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쉼 없는 노력에도 왜 이상은 멀어지기만 할까?" 해답을 찾아야 한다. 다만, 과거와는 다른 파격적인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 이므로 변해야만 했다. 휴직을 했다. 업무가 한창인 7월에 휴직원을 제출하고 회사 밖으로 뛰쳐나왔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마포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보증금 3천에 월세 80만 원 8평 작은 방 1개. 다시 빈털터리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이 들었지만 한강을 걸어보고 싶었다. 이사 첫날, 잠자는데 필요한 이불과 베개만 구매한 후 밤 9시 즈음 집을 나와 한강으로 향했다. 매번 시간에 쫓겨 봤던 야경을 천천히 눈에 담고 싶었다. 2. 이상과 ..

에세이 2022.06.22

나를 관조하다(1)

0. 조연의 꿈 특별한 삶을 원한 건 아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연이 되고 싶었다. 극적인 반전도 배신도 없는 예측 가능한 일상을 살며 세상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싶었다. 그러다 누군가 나를 발견하면 사랑에 빠져 평범한 가족을 이루는 거지. 아이는 딱 1명. 한강을 15분 내로 걸을 수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사서 매달 150만 원의 이자를 내고, 보행기에 아이를 태워 유유히 한강을 거니는 모습. 나의 이상향이다. 시작은 괜찮았다. 나는 한 번의 실패 없이 대기업에 입사했다. 부모님의 자랑이 되었고 거의 나간 적 없는 학교에서도 본받을 선배라고 치켜세웠다. 예쁜 여자 친구도 있었다. 과 동기들이 공무원 학원 다닐 때 그 애와 놀았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힘없이 학원에 끌려가는 친구들을 보며 우..

에세이 2022.06.13

아버지는 수북이 쌓인 모래를 삽으로 퍼 모래채에 던졌다. 먼지는 사방으로 흩날리고 나는 콜록이며 옆에 앉아 채를 통과한 모래가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생각했다. 우리 집을 짓는 중이었다. 희미하게 그어진 집터와 비포장 도로 밖에 없는 곳에서 모래를 갈고 벽돌을 쌓았다. 계획 단지로 조성된 동네 곳곳도 공사 중이었다. 집이 생기는 건 좋았지만 지역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시내에 갈 수 있고 가장 높은 건물은 5층 아파트가 전부였다. 촌놈이 된 기분이었다. 왜, 시내에는 집을 못 짓는 걸까? 촌티 나는 애들과 학교를 다녀야 하나? 등을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이사하던 날 어깨에 힘 들어간 부모님과는 다르게, 친구에게 주말마다 오겠다 말한 후 무덤덤하게 떠났다. 사실 좀 더 행복했어야..

에세이 2022.03.28

일상 속 내 마음

-아침에는 평안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몽롱한 정신이 밝아져 평범한 내가 되어갈 때 좀 더 여유롭고 싶다. 물을 끓여 도라지 차를 내린다. 한 모금은 입을 헹구고, 두세 번째 모금은 마시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다. “버려진 것”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몸속에서 따듯하게 섞이지 못하고, 차가운 철 위에 혼자 식어가니까. 1~2초 정도 불편한 감정이 지나간다. 하지만 내 몸에 온기가 퍼지면 “그것”은 금세 잊혀 버린다. 여유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으니까. -너를 볼 때면 그녀에게 다가서고 싶은 마음과 체통을 지키라는 마음이 충돌한다. 일상 대화를 하며 그 사람을 알고 싶을 뿐인데, 이 세상에는 제약이 너무 많다. “아니다”, 단지 대화만 원했으면 이렇게 부담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이 무거운 건, 그를..

에세이 202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