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5

나를 관조하다(4)

4. 추해지지는 않는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친한 친구에게 마저 본모습을 감추는 내가 우스웠다. 마포대교를 뛰어온 다리는 물에 젖은 듯 무겁고 피로해진 나는 벤치에 앉았다. 공원을 산책하던 가족 그리고 연인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 내며 내 앞을 가로질러갔다. 하지만 나와는 무관한 백색 소음에 불과했고 군중의 웅성거림 속에서 순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적막뿐이다. 산책하는 사람도 대교를 달리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슬에 젖은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황급히 일어나 오피스텔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이곳에 온 이유도 잊어버린 채 외로운 감정이 사치였던 듯, 단지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길고양이처럼 움직였다. 서강대교를 건너기 전 편의점에 들러 따..

에세이 2022.07.12

나를 관조하다(3)

3.거짓말쟁이 여의도 한강공원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I SEOUL U"라는 문구가 보인다. "나는 너를 서울 한다?". 처음 봤을 땐 감각 없는 공무원이 멋대로 만든 슬로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볼수록 매력적이다. "SEOUL"이란 단어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데 누군가 박살내고 싶을 때는 Hate, 무시하고 싶을 때는 Ignore, 좋아할 때는 Like 등을 집어넣고 편한 대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 사람의 혼재된 감정을 담는 그릇 같다고 할까. 오늘 내 마음에 들어온 "SEOUL"은 Miss 인 것 같다. 혼자서 휴직을 결정하고 이사하고, 또 홀로 걷는 나는 사람이 그립다. 괜한 생각을 해서 기분이 다운된다. 발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으면 이대로 축 쳐질 것 같다. 하지만 ..

에세이 2022.06.27

나를 관조하다(2)

1. 자기부정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쉼 없는 노력에도 왜 이상은 멀어지기만 할까?" 해답을 찾아야 한다. 다만, 과거와는 다른 파격적인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 이므로 변해야만 했다. 휴직을 했다. 업무가 한창인 7월에 휴직원을 제출하고 회사 밖으로 뛰쳐나왔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마포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보증금 3천에 월세 80만 원 8평 작은 방 1개. 다시 빈털터리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이 들었지만 한강을 걸어보고 싶었다. 이사 첫날, 잠자는데 필요한 이불과 베개만 구매한 후 밤 9시 즈음 집을 나와 한강으로 향했다. 매번 시간에 쫓겨 봤던 야경을 천천히 눈에 담고 싶었다. 2. 이상과 ..

에세이 2022.06.22

나를 관조하다(1)

0. 조연의 꿈 특별한 삶을 원한 건 아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연이 되고 싶었다. 극적인 반전도 배신도 없는 예측 가능한 일상을 살며 세상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싶었다. 그러다 누군가 나를 발견하면 사랑에 빠져 평범한 가족을 이루는 거지. 아이는 딱 1명. 한강을 15분 내로 걸을 수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사서 매달 150만 원의 이자를 내고, 보행기에 아이를 태워 유유히 한강을 거니는 모습. 나의 이상향이다. 시작은 괜찮았다. 나는 한 번의 실패 없이 대기업에 입사했다. 부모님의 자랑이 되었고 거의 나간 적 없는 학교에서도 본받을 선배라고 치켜세웠다. 예쁜 여자 친구도 있었다. 과 동기들이 공무원 학원 다닐 때 그 애와 놀았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힘없이 학원에 끌려가는 친구들을 보며 우..

에세이 202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