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4

3월 21일 (혼자 있는 시간)

3월 21일, 바람 심함 정학 15일, 방과 후 교무실 청소 15일. 멸치를 떄린 결과이다. 나는 보름 넘는 자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봄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 처음 며칠은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빌려 읽었다. 시간이 많으니까, 한두 페이지 읽고 주인공 모습을 그려보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도 해보았다. 혼자서 여유롭게 지내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못가 지루해졌다. 수업 중에 몰래 보던 만화책의 재미를 따라갈 수 없었다. 역시 책을 읽고 사색하는 건, 바쁜 와중에 짬을 내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오후 2시가 되면 혼자 집에 남게 된다. 아빠는 새벽에 장사하러, 누나와 엄마도 학교와 방직공장으로 떠난다. 엄마는 11시 정도에 내가 먹을 점심을 준비한 후 나가는..

중2 일기장 2023.01.22

홀로 떠나는 통영 버스 안에서

11월 11일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밤 11시 정각. 나는 통영으로 향한다. 벌써 세번째 방문. 똑같은 네 시간의 여행이 펼쳐질 것이다. 같은 길을 지나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골 마을에 도착. 그리고 첫 마을버스가 올 때까지 허름한 터미널을 서성이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6년 전 그리고 10년 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창밖의 어둠이 흩어지길 기다릴 것이다. 출발 10분전. 편의점에 들러 차가운 생수와 뜨거운 캔 커피를 산다. 생수는 단지 목마름을 위한 예방약. 어지간해선 마시지 않는다. 손끝으로 뚜껑을 잡아 곧바로 가방에 넣은 후, 긴 여행에 온기를 줄 커피를 입에 담아 차에 오른다. 버스엔 사람이 가득하다. 가장 구석진 자리까지 둘러 앉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해댄다. 이상한 일이다..

에세이 2022.10.31

올 가을도 춥다

한국은 벌써 가을입니다. 저는 이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긴소매를 입습니다. 태생적으로 몸이 차가워 기온이 떨어지면 금세 손끝과 발끝의 감각이 무뎌지는데, 그때부터 흘러버린 시간의 허무함과 혼자라는 외로움이 커집니다. 그래서 가을이 싫고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고 싶어 진답니다. 머, 떠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요. 올해는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처음으로 자연스러운 만남을 해봤고 데이팅 앱에서 마음이 통했던 사람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제가 아름답지 않아서 인지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특이한 생명체를 대하듯 저를 관조하기만 해서 저는 마치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앞에서는 몇 시간씩 웃고 이야기하는데 돌아서면 자기 생활을 하나도 말해주지 않거나, 바로 어제까지 ..

편린 2022.08.28

나를 관조하다(4)

4. 추해지지는 않는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친한 친구에게 마저 본모습을 감추는 내가 우스웠다. 마포대교를 뛰어온 다리는 물에 젖은 듯 무겁고 피로해진 나는 벤치에 앉았다. 공원을 산책하던 가족 그리고 연인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 내며 내 앞을 가로질러갔다. 하지만 나와는 무관한 백색 소음에 불과했고 군중의 웅성거림 속에서 순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적막뿐이다. 산책하는 사람도 대교를 달리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슬에 젖은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황급히 일어나 오피스텔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이곳에 온 이유도 잊어버린 채 외로운 감정이 사치였던 듯, 단지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길고양이처럼 움직였다. 서강대교를 건너기 전 편의점에 들러 따..

에세이 202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