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5

3월 13일 (중학생의 권태)

3월 13일 맑음 또, 일본 누드 잡지를 가져다 내게 내민다. 시시하다. 여자 몸을 보며 떠드는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인데, 친구들은 그걸 알지 못한다. 나는 벌써 중학교 2학년, 14살이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색시를 얻어 장가갈 나이이다. 어엿한 어른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즐겨했던 놀이도 땅기지 않는다. 인목이와 NBA 농구를 흉내 내던 것도, 미용실 여자아이와 몰래했던 검은 별 놀이도 이제 흘러간 추억이 되었다. 어제는 철환이가 집에 찾아와 한참 동안 날 불렀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홀로 조용히 사색하며 등교하고 싶었으니까. 확실히 2학년이 되자 많은 게 변했다. 작년 겨울 12cm 넘게 크면서 세상을 내려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딴또'라고 놀려대던 애들도 이젠 날 존경으로 대한다...

중2 일기장 2023.01.05

패배를 인정합니다

2022년 10월 10일 (쌀쌀한 비, 마음 우울) S/W 자격시험 최종 탈락. 보기 좋게 실패했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패배라 오히려 홀가분 한 기분이 들어.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어.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기." 내게도 행운이 있는지 시험해보았어. 지나간 모든 성취는 나를 갈아 넣는 노력이 필요했고, 목표 달성 후에는 허무함만 몰려왔어서, 이번만큼은 일상의 행복과 결과를 함께 달성하고 싶었어. 방긋 웃는 여유를 유지한 채 말이야. 하지만 역시 망상에 불과했지. 세상은 단칼에 "안돼. 그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나를 수렁으로 던지려 해. 그래. 나도 알아. 모든 사람이 자기를 뛰어넘으려 노력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데, 나처럼 설렁설렁해서는 무..

편린 2022.10.10

시험 준비의 명약 정신승리 (뇌의 오류)

2022년 9월 26일 맑음 (정신상태 맑음, 콧물 있음) 오랜 친구에게 비굴한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S/W 자격시험 기출문제 있어? ^^;" 아, 사람이 몰리면 품격이고 자존심이고 사라진다더니, 내가 그렇게 비웃던 중국인 수험생처럼 시험후기를 찾아 헤매고 있구나. 이런 비굴함은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 신님, 동물과 식물,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나의 파멸을 원하는 듯, 나는 지난번 시험에 떨어져 버렸다. 그것도 얼빵한 중학생이나 할 초보적인 실수(차마 적기도 부끄러운)를 해서 3개월의 노력을 날려버렸다. 나는 안다. 이런 대 실패뒤의 도전은 허무하게 끝난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망하는 흐름 위에 있어서 정석으로는 합격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

편린 2022.09.26

내 세계를 형성하련다

2022년 9월 21일 맑음 (정신상태 맑음, 감기 기운 있음) 일기를 틈틈이 쓰기로 했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 아침 주말에 뭐할까 고민하다 습관처럼 전시회를 찾아봤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전시회나 미술관을 많이 갔지만 별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시간 때우기 위해 작품 주변을 서성였을 뿐 감동을 받거나 여운이 남진 않았으니까. 그 이유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나만의 세계가 없어서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 확인하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작품에도 몰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세계를 만드는 목적이 작품 감상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것보단 내 속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는 어떤 세계를 펼치려 하나? 생각나는 키워드를 노트에 적어 ..

편린 2022.09.21

포기하고 싶은 마음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다. 퇴근 후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재태크에 쏟아부었지만 유의미한 성과는 없었다. 1년에 500~600만 원 내외의 수익 또는 손실. 배우는 단계라고 자위해도 좀 허탈하다. 머리가 나쁜 것일까? 감각이 없는 것일까? 핵심에 닿지 못하고 학습만 하고 있다. 결과를 못 내는 건 나의 오랜 습성이다. 닥치는 대로 책 읽고 실행해도 항상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 나는 강박이 있다. 내일은 더 나아야 한다는 강박. 퇴사 후에도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강박. 그동안 투자와 글쓰기를 진행한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점점 포기하고 싶어 진다.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3시간 넘게 책상에 있어도 한 문장도 못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몰려드는 자괴감. 왜, 나는 헛된 기대를 품고 스스..

편린 2022.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