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8

봄에는 새로운 즐거움 찾을 거에요

좋아하는 걸 글로 쓰는 숙제를 받았어요 한참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요 달리면서 되뇌고 노트에 끄적여봐도 공백뿐이에요 시간을 되돌려 봤어요 클라우드에 기록된 사진을 스크롤 해봤어요 1년 3년 그리고 7년 지금과는 다르게 미소 짓고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한 제가 보여요 옆에는 더한 그대가 있고요 깨달았어요 그때도 딱히 좋아하는 건 없었다는 걸 단지 당신이 저를 감싸주었고 그 안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았다는 걸 이제 당신은 멀리 있어요 비행기를 타도 닿을 수 없죠 거리만큼 나는 아득해져요 그쪽이 지워졌으면 좋겠어요 누가 나를 잘게 쪼개 기억과 함께 던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또다시 봄이에요 온기 퍼지는 이 봄 내게도 오늘의 즐거움이 필요해요 떨어지는 벚꽃 나무 밑에 서볼까요 그곳에선 혼자 있어도 꽃이 저를 받..

2022.03.23

붉은 마음

마음에는 색이 있다 색이 섞여 변하듯 마음도 섞여 변한다 무채색인 내게 붉은 네가 와서 난 빨개지고 있다 처음에는 시나브로 약하게 시간 흐를수록 강하고 선명하게 결국 너보다 붉어진 나 이제 색 빠진 너는 붉게 해 줄 빛을 향해 나아가고 이미 붉어져 제가 된 나는 이곳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가엾은 붉은 마음 내 속에 갇혔네* * 빈집(기형도) 마지막 문장 구조 참조

2022.02.06

내 장례식에서는

즐겨듣던 00년대 힙합과 일본 시티 팝을 틀어놓고 슬랙스에 하얀 운동화 그리고 검정색 터틀넥 입혀서 평소의 나처럼 치장해주길 소주 대신 과일 향 가득한 IPA 생맥주 식장 전체에 비치하고 호주에서 촬영한 하버브릿지, 새하얀 유람선 사진 번갈아 틀어놓아 주길 마지막으로 내가 쓴 짧은 글, 목소리 좋은 성우 불러서 감미롭게 낭독해 주길 내 장례식은 오직 나를 위해 축하해주길.

2022.02.01

여름에서 가을로

-여름에서 가을로 한낮은 여름 열기 가득해도 새벽은 벌써 가을이구나 나무는 색을 변화시킬 준비하고 매미는 짝짓기 후 죽어가네 의식하지 못한 사이 해는 짧아지고, 에어컨을 활용하는 날이 줄어들고, 긴 소매 입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러다 갑자기 가을 되겠지 나도 모르게 어른 된 것처럼 이 여름도 순식간에 사라지겠지 사람들은 시원한 가을 좋아하겠지만 나는 뜨거운 여름을 기억하고 싶어 변화하는 지금을 생생히 느끼고 싶어 (시를 쓰며 생각) 삶이 단축되는 것을 느낀다. 올해의 1년은 항상 작년보다 짧다. 인생에 있어 멋진 시간은 찰나인데 오직 그 순간을 위해 사는 게 낭비인 것 같다. 목표를 잡아 매진하고, 에너지를 쏟아내고, 그래서 성취를 이뤘을 때 뿌듯함보다 공허만이 남았다. 나는 꽃 피는 것도 오리와 너구리..

2022.01.23

이별 후 마음 변화

(1) 이별 후 첫 마음 넌 나를 반품 시켜버렸어 포장도 고이 개어 놓지 않은 채 네 방에서, 네 욕조에서, 네 자동차에서 마음껏 쓴 후 던져 버렸어 벌거벗겨진 쓰레기 같은 나. 나는 이제 아무도 찾지 않아서 진공의 소각장으로 향해지고 있어 싸구려 포장지로 날 감싸 줬다면 나는 죽지 않았을 텐데 너, 환히 미소짓고 있는 너는 거지 같은 x야. (2) 이사 후 첫날 밤 가구 들어오고 차가웠던 방바닥에 온기 퍼져도 여전히 공기는 싸늘합니다 새집에는 설렘도 자장면 나눌 사람도 없습니다 지쳐 누운 한 남자뿐입니다 추운 밤 당신이 미워져 한때 소중한 물건 봉투에 담아 버리러 나갑니다 막상 내던지려 하니 마음 아프고 그냥 두려 하니 그대가 선명해집니다 “아.. 어떡해..” 하는 수 없이 다시 풀어 종이 박스에 욱여..

2022.01.23

* 당신은 언제 어른이 되지

행복 따위 꿈꾸지 않기. 소식에 놀라지 않기. 어쨌든 슬퍼하지 않기. 그와의 사진 속에서 살지 않기. 차가워지는 연습을 하자. 이제 그만 두자는 말처럼 짧고 가볍게, 그리고 관심 두지 않기 혹 시간이 나거든 휴가를 내고 시드니에 가서 오페라 하우스 앞에 앉는 거야. 사진 찍고 피시앤칩스 먹고 돌아오는 거지. 그날 이후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그리움은 어린아이의 것이야. 잘 생각해. 너는 떠올리면 안 돼. 떠올리면 그도 나를 생각할까? 이런 거 기대할 거잖아. 뻔해, 그는 이미 어른이 되었을 텐데. 가끔 기도는 할게. 너의 슬픔이 너를 완전히 감싸지 않기를. 그러니까 다시는 가슴 설레이지 않기. 이별은 계속되고 또 새로울 거니까. 이렇게 말해도 너 다시 할 거지? 다시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배에서는 뛰어..

202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