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를 관조하다(2)

수지 문지기 2022. 6. 22. 20:38

1. 자기부정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쉼 없는 노력에도 왜 이상은 멀어지기만 할까?"

 

해답을 찾아야 한다. 다만, 과거와는 다른 파격적인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 이므로 변해야만 했다. 휴직을 했다. 업무가 한창인 7월에 휴직원을 제출하고 회사 밖으로 뛰쳐나왔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가장 먼저 마포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보증금 3천에 월세 80만 원 8평 작은 방 1개. 다시 빈털터리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이 들었지만 한강을 걸어보고 싶었다. 이사 첫날, 잠자는데 필요한 이불과 베개만 구매한 후 밤 9시 즈음 집을 나와 한강으로 향했다. 매번 시간에 쫓겨 봤던 야경을 천천히 눈에 담고 싶었다.

2. 이상과 마주하여

마포 대교를 걷는다. 빛이 가득한 여의도 한강 공원을 향해 걸어간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소음을 내며 달리고 더러운 먼지와 분진이 자꾸 나를 따라온다. 다리는 아름답지 않다. 멀리서 봤을 때 달빛처럼 따듯하게 퍼지던 할로겐 가로등은 어둡기만 하다. 누군가 마시다 버린 음료수 캔을 밟았다. 타인의 침이 섞인 불결하고 미지근한 액체가 튀어 발목을 끈적하게 만든다.

"씨발 좆같네".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 욕이 되었다. 양말을 벗고 가지고 있던 생수를 들이붓어 음료수를 털어낸다. 그래도 남은 이물질은 손으로 제거한 후, 운동화에 발을 걸치고 난간을 잡아 일어선다. 맞은편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쇠줄로 만들어진 자살 방지 난간을 뚫고 또 다른 한강에서 날아온 바람이 청명하다. 깊이 숨을 들이쉬자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나는 난간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한다. 난간에는 깨지고 지워진 위로의 말이 가득하다.

*한 번만 더 가보자
한 번만 더 만나고
한 번만 더 맛보고
한 번만 더 듣고
한 번만 더 안아보자
그렇게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한때는 글귀에 조명이 비췄다는 사실을 알려주듯 새겨진 글자의 색이 각기 다르게 바래 있다. 용기를 주는 말 옆에는 죽음을 암시하는 욕설과 조롱이 자리 잡고 있다. "뛰어봐 ㅋ 쫄보 새끼 ㅋㅋ", "성OO 투신장소 성지순례", "아아 님은 갔습니다. 맛이 갔습니다" 등. 시간이 가면서 인간의 어둠만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게 나의 이상인가?"

답답했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자동차 불빛을 따라 무작정 달렸다. 다리 끝에 도착해 숨을 가다듬고 한강 풍경을 하나씩 되돌아봤다. 마포대교는 분수에서 물을 발사하고 다리 밑 경관 조명의 색이 주기적으로 변했다. 빨강, 노랑, 녹색, 파랑이 각기 변하다 하나의 색으로 합쳐지고 분수는 무지개가 되어 강에 떨어졌다. 핀 조명 가득한 달빛 유람선이 무지개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고 승객들은 나른한 음악을 들으며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도 모습도 알 수 없었지만 평화로운 행복감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 멀리서 바라본 한강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역시 나의 이상향.

* 실제 마포대교 석판에 각인되어 있던 문구

* 마포대교에는 분수가 없지만 상상력으로 만들어 냄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관조하다(4)  (0) 2022.07.12
나를 관조하다(3)  (0) 2022.06.27
나를 관조하다(1)  (0) 2022.06.13
안부인사, 봄날 광화문에서  (0) 2022.04.04
  (0) 2022.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