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부인사, 봄날 광화문에서

수지 문지기 2022. 4. 4. 21:36

날씨가 좋아 휴가를 내고 광화문에 왔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 일하는 건 삶의 낭비 같아서요. 덕수궁을 걷고 싶었는데 휴관이어서 그 옆 돌담길로 향했답니다. 직장인 그리고 연인들이 나와서 벚꽃을 찍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웠죠. 하지만 나는 그 길을 빠르게 지나쳐 정동극장에 도착했습니다. 가운데 텅 빈 공간이 있고 사람들은 가장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녹아들고 싶어 아메리카노와 갈릭 브레드를 사서 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자리 잡았습니다.

여유로웠습니다. 서울에 나만의 아지트를 발견한 것 같아 기뻤고 함께 올 누군가를 떠올리면 설레었습니다. 그러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불확실한 사람을 기다리고 상상하는 제가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좋은 날, 슬픔이 커지는 건 싫어 당장 할 수 있는 걸 떠올려봤습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 안부인사가 생각났습니다. 처음엔 당신이 받는 이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추억을 함께 한 사람들, 예를 들어 호주에 살고 있는 여자 사람, 같이 여행 다니던 고향 형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멀리 있어 인사가 닿지 못할 것 같았고 답신이 오지 않거나 형식적인 문장만 돌아올까 겁 났습니다. 최소한 그쪽은 거짓 없이 답장할 걸 알기에 안부를 묻습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너무 큰 질문인가요.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지금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저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당신의 다른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데 곁에 있는 사람은 그려지지 않아서요. 원했던 데로 사랑 많이 받은 사람과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빠져 더 이상 글 쓰지 않고 시간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으면 저는 가장 기쁠 것 같습니다. 답장이 온다면, 당신의 글이 자신에게 갇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으면 합니다. 혼자 있는 걸 특별히 슬퍼하지 말고 단지 삶의 모습 중 하나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오늘 오후는 햇빛이 강해 거실보다 밖이 더 따뜻했습니다. 그렇다고 집이 필요 없는 건 아니지요. 밤이 되면 차가워진 공기를 막아 줄 공간이 필요하듯, 당신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행복했으면 해서요. 아니, 행복하진 않아도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다라고 느꼈으면 해요. 묵묵히 살아내야만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러니 비록 혼자 있어도, 그대 사라지지 말아요*. 

* 박노해 시 마지막 문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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