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과 단상

내가 잊혀지는 과정.. (기억을 버리는 법 - 김혜수)

수지 문지기 2023. 10. 29. 19:30

버리자니 좀 그런 것들을

상자 속에 넣어 높은 곳에 올려놓는다

가끔 시선이 상자에 닿는다

쳐다보고만 있자니 좀 그런 것들을

더 큰 상자에 넣어 창고 속에 밀어버린다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모서리가 삭아내리는 것들

자주 소멸을 꿈꾸며

닳아 내부조차 지워져버린 것들

가끔 생각이 창고에 닿는다

고요한 어둠속에서 점차

생각조차 희박해지고

창고를 넣을 더 큰 상자가 없을 때

그때 상자 속의 것들은 버려진다

 

나도, 자주, 그렇게 잊혀갔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