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어요
네모반듯한 교정 한구석에 늘어선 양버즘나무들이
천천히 그늘을 움직이고
양버즘나무 그늘의 중심에 숨은 매미 떼가
쉬지 않고 울어대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가득 거대한 여객기들이 유유히
줄지어 돌아오는 꿈이었어요
너무나 거대했던 나머지 하늘은 보이지 않고
여객기들과 그것들이 남긴 비행운만 섬섬이 빛나는
그럼 꿈이었어요 그들의 활주로가
어느 쪽으로 놓여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낮고 느린 비행이 우리에게 잇따른 안착을 꿈꾸게 하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운동장에 늘어선 우리는
입을 벌린 채 탄성을 내지르며
공중을 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여객기의 좁은 창문들 새로 얼핏 보일 것 같은
여행자들의 벅찬 마음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때였어요
대열의 끝에서 여객기 하나가 항로를 벗어난 것은
한껏 바람을 불어넣다 놓쳐버린 풍선처럼
후미의 여객기는 제멋대로 자주 방향을 바꾸더니
이내 구름 너머로까지 치솟아올랐습니다
운동장에 늘어선 우리는 기다렸어요
어리둥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유가 있겠지 설마 떨어지기야 하겠어?
생각하는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입가의 웃음기를 잃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우리는 기다렸어요 기다리자
후미의 여객기는 돌아왔습니다
기체는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운동장에 늘어선 우리의 머리 위로 곧장
기체는 떨어지고 있었어요
우리는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던 것이 돌아왔지만
우리는 너나없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꿈을 꾸었어요
달아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달아나며 생각했어요
돌아온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돌아와도 돌아오지 못한 거란 건 또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너나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정 너머로 나무 그늘 너머로 구름 너머로
그리고 거대했던 꿈 너머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돌아와도 돌아오지 못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기다렸던 걸 달아나는 건, 또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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