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과 단상

사라져버리는 것들(하루키)

수지 문지기 2023. 10. 8. 19:57

1.

지금도 아침 일찍 진구가이엔이나 아사카사고쇼 주변 코스를 달리고 있으면, 그들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코너를 돌면 그들이 맞은편에서 하얀 숨을 내뿜으면서 묵묵히 달려 오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만큼 혹독한 연습을 견뎌온 그들의 생각은, 그들이 품고 있던 희망과 꿈과 계획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하고. 사람의 생각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그다지도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하고.

 

2.

오늘은 달리면서 커다랗고 포동포동한 캐나다 거위 한 마리가 찰스 강가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람쥐도 한 마리 나무 밑동에 죽어 있었다. 깊이 잠든 것처럼 그들은 죽어 있었다. 그 표정은 그저 조용히 생명의 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뭔가로부터 겨우 해방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받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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