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까?

수지 문지기 2023. 2. 13. 20:51

국민학교 시절, 사촌 누나가 "사람은 다 죽어"라고 내게 말했다. 시크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나는 그때 너무 놀라서 엄마에게 달려가 "정말 모두 죽는거야? 라고 되물었고, 엄마는 아무말 없이 날 안아주었다. 11살 이었다. 집에서 기르던 백구가 얼어 죽고, 휠체어를 타고 놀이터에 오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되자, 살아있는 건 결국 사라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단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내 삶에서 죽음은 하나씩 실체화 되었다. 처음엔 이름 모른 친척이 죽었고, 그 다음엔 같이 살던 할머니가, 나보다 어린 사촌동생이 그리고 아버지가 죽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성당 묘지에 묻으며,  내게 "주님 곁으로 가셨다. 그곳에선 마음대로 걷고, 훈장 노릇을 하며 지낼게다. 이곳보다 좋을거야"라고 말했다. 난 그 말이 사실인지 모르지만, 의식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태어나기 전에도 어딘가에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겐 주님 옆이고, 무신론자들에겐 사람을 형성하는 기본 원자나 분자로 흩어지는 것을 말할 것이다. 죽음이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 심지어 평안에 닿을 수 있는 길이라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두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죽음 앞에서 떨어댄다. '좋은 곳으로 돌아가셨다'라는 말도 서로를 속이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은 항상 어두웠으니까. 왜, 죽음을 두려워 하는걸까? 성직자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왜 공포에 질리는 걸까.

 

인간에겐 자의식이 있다. 나를 나라고 인지하기 때문에, 세상과 벽을 쌓을 수 있고, 그 벽 안에서 ego가 형성된다. 사람은 ego를 통해 필터화된 세상을 경험하며 의미있는 것, 버려야 할 것 등을 구분하며 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인간의 부속에 지나지 않았던 ego가 결국 인간 자체를 대변하게 된다. 그런데, 죽는다는 건 세상과 나를 구별했던 벽이 얇아지며, 자연스레 ego도 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건, 수십년간 쌓아온 삶의 정수, 즉 ego가 흩어지는게 슬퍼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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