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대물림

수지 문지기 2022. 4. 13. 08:44

아이는 출생이 불분명했다. 2살~3살 즈음 그의 아버지가 집으로 데려왔다. 고아원에서 입양한 것인지, 씨받이 친모가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태어났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는 교육받지 못했고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재혼하기 전 낳은 중학생 아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가정은 아니었다.

아이는 사랑받지 못했다. 아이 집에 가면 부모의 욕설과 폭언을 항상 들을 수 있었다. 소풍 도시락도 싸주지 않았고, 운동회나 참관수업에도 부모는 오지 않았다. 그들은 말했다 "아이 학자금을 준비하려면 부부가 함께 일할 수밖에 없다"라고. 아이는 정신적으로는 불안하고 육체적으로는 왜소하게 성장했다.

아이는 군 제대 직후 결혼했다. 급작스런 임신으로 인한 결혼이었지만 독립된 가정을 꾸리는 게 그 아이에게는 더 좋아 보였다.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했다. 그러나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고 외지에서 혼자 살았다.

아이는 외톨이였다. 본가에 가도 따듯하게 맞아주는 가족은 없었다. 부모는 오히려 결혼생활을 망친 아이를 비난했다. 술 취한 어느 날, 아이는 딸이 보고 싶어 이혼한 와이프를 찾아갔다. 아내는 딸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비로서의 좌절감, 삶의 무의미함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아이는 자살했다 (겨우 20대 중반에). 머무를 곳이 없었던 아이, 출생조차 불분명했던 아이는 고통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 고통은 아이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도 불행했다. 그리고 딸은 편모가정에서 성장한다. 대물림, 특히 고통의 대물림은 끝없이 이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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