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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어느 날 제 가슴에 아스라이 무지개가 걸렸고 그건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무지개 빛깔은 점점 또렷해져서 저는 지금껏 한 번도 그걸 놓친 적이 없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맑은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이윽고 더 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무쪼록 그 분께 물어봐 주세요. 그분은 정말로 저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그야말로 비 개인 하늘의 무지개처럼 생각하신 걸까요? 그리고 까마득히 사라져 버렸노라고?
맨 처음 올린 편지에 제 가슴에 걸린 무지개에 대해 썼습니다만, 그 무지개는 반딧불, 혹은 별빛처럼 그렇게 고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토록 멀고 옅은 마음이었다면, 제가 이렇듯 괴로워하지 않고 서서히 당신을 잊을 수 있었겠지요. 제 가슴속 무지개는 불꽃의 다리입니다.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갈만큼 그립습니다.
만약 이런 편지를 조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자가 살아가는 노력을 조소하는 사람입니다. 여자의 목숨을 조소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숨이 턱턱 막히는 퀴퀴한 항구의 공기를 참을 수 없어, 항구 바깥에 태풍이 몰아친다 해도 돛을 올리고 싶습니다. 쉬고 있는 돛은 더럽기 마련이죠. 저를 조소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모두 쉬고 있는 돛입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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