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과 단상

4.인간 실격 -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수지 문지기 2022. 8. 12. 10:39

세 번째 수기

“끊겠어. 내일부터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을 꺼야.”
“정말?”
“꼭 끊을꺼야. 끊으면 말이야. 요시코 내 각시가 돼 줄래?”
각시 애기는 농담이었습니다.
“물론이죠”

 

“요시코 미안 마셔버렸어”
“어머 장난치지 말아요. 술 취한척 하고”
“아니야 내게는 자격이 없어. 각시가 되어 달라고 한 것도 단념하는 수밖에. 얼굴을 봐, 빨갛지? 정말로 마셨다니까”
“그야 석양이 비치니까 그렇죠. 날 속이려 해도 안될걸요? 어제 약속했는데 마실 리가 없잖아요? 손 가락 걸고 약속한 걸요. 술을 마셨다니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렇게 해서 저희는 이윽고 결혼했고, 그로써 얻은 기쁨은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 후에 온 비애는 처참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습니다.


호리키가 멈춰 서더니 "봐!"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손가락을 가리켰습니다. 우리 방 위의 작은 창이 열려 있었고, 그곳으로 방 안이 보였습니다. 전깃불 아래 두 마리 짐승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찔어찔 현기증이 나면서 이 또한 인간의 모습이야, 이 또한 인간의 모습이야, 놀랄 것 없어 등등의 말을 거친 호흡과 함께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요시코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린채 계단에서 못 박힌 듯 서 있었습니다.

 

아아, 신뢰는 죄인가요?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사실보다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그 뒤에도 오래오래 저한테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녀가 지닌 귀한 장점 때문에 능욕당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 장점이라는 것은 남편이 예전부터 동경하던 순결무구한 신뢰심이라는 한없이 애잔한 것이었습니다.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요?

유일하게 믿었던 장점에조차 의혹을 품게 된 저는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알코올에 손을 뻗칠 뿐이었습니다. 제 얼굴은 극도로 천박해졌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소주를 마셨고, 이빨은 흐물흐물 빠지기 시작했고, 만화도 거의 외설에 가까운 것을 그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