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과 단상 36

자아는 스스로를 구속한다 (인생독본)

자신에 대해 걱정할수록, 자신에게 얽매일수록, 자신의 삶을 아낄수록 인간은 약해지고 자유에서 멀어진다. 반대로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할수록, 덜 얽매일수록, 덜 아낄수록 인간은 강해지고 자유로워진다. (톨스토이) 만약 자기 존재와 자기 의지를 부정할 수 있다면 모든 일은 쉽고 좋아질 것이다. (톨스토이) 잠시나마 자기를 부정하는 삶을 살아보려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절대적인 자기부정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를 평가할 수도, 그런 삶을 비판할 권리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총명하고 정직한 인간이라면 자기를 잊고 부정하는 우연한 순간이 정신과 육체에 얼마나 귀중한 영향을 끼치는지 감히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러스킨) 자아라는 갇힌 방을 나와 세상과 부딪히고 섞이라는 말 같다. 절대정신으로 일체화. 하지만 잘못되..

명문과 단상 2022.11.11

무지의 두 가지 종류 (톨스토이 - 인생독본)

지식은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아주 많은 것을 알아도 가장 필요한 것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인간의 무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순수하고 자연적인 무지로 인간은 이런 무지의 상태에서 태어난다. 다른 하나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무지다. 그들은 온갖 학문을 배우고, 사람들이 알았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게 되어도, 신의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하기에는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소위 많이 배운 사람들도 실제로는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저런 학문을 찔끔찔끔 겉핥기식으로 접하고 교만해진 천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해 교만해 경솔한 판단을 내리고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른다. 또한 사람들을 현혹시켜 간혹 존경을..

명문과 단상 2022.11.10

삶과 죽음은 두 개의 경계선이다 (톨스토이-인생독본)

죽은 뒤 영혼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한다면, 태어나기 전의 영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네가 어딘가로 간다면,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온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네가 이 삶으로 왔다면, 분명 어딘가에서 온 것이다. 만약 죽은 뒤에도 살게 된다면 그전에도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죽은 뒤 어디로 갈까?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왔던 곳에는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거기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거기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죽은 뒤에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라면 죽음 뒤에도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본래 있던 자리로 간다는 의미겠지.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

명문과 단상 2022.11.09

종교의 본질 (인생독본 - 톨스토이)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자신을 이 땅으로 보낸 존재가 누구인지, 그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고 적어도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길 바라 왔다. 종교는 그런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을 하나의 기원과 공통된 삶의 과제와 공통된 궁극의 목적을 가진 형제로 묶어주는 연결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서 등장했다. (마치니) 아무리 원치 않더라도 이 세상과 우리가 결합되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업과 교역과 예술과 지식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우리 처지의 동일성이, 세계에 대한 우리 관계의 동일성이 우리를 결합하고 있다. (톨스토이) 모든 종교의 본질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를 둘러싼 무한한 세계와 나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에 있다. 가장 숭고한 종교에서 가장 ..

명문과 단상 2022.10.24

믿어서 행복에 도달한다

죽음을 이웃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보다도, 한 송이 꽃의 미소가 더 몸에 사무친다. 우리는 지금, 말하지면 아스라한 꽃향기에 이끌려 정체 모를 큰 배에 실려 하늘의 항로를 따라 되는데로 몸을 맡긴 채 나아가고 있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그 배가 어느 섬에 다다를지, 그건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항해를 믿어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은 이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할 열쇠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죽은 자는 완성되고, 산 자는 출범하는 배의 갑판 위에 서서 죽은 자에게 합장한다. 배는 스르르 바닷가에서 멀어진다 (다자이 오사무 - 판도라의 상자) 마음을 다해서 거짓없이 하루를 살고 싶다.

명문과 단상 2022.10.05

오롯이 버텨야 할 때

여행을 잘하는 사람은 생활에서도 절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여행이 서투른 사람이 여행하는 동안 가장 쩔쩔맬 때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머무는 시간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생에서 몇 시간 동안 '내려와 있는' 상태이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차 안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그래도 끝내 견디지 못해 차에서 내려 자기 힘으로 가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소위 '여행을 잘하는' 사람은 차를 타고 있는 동안, 즐긴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간 동안 마음을 비울 수는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굉장한 말로 표현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능력이다. 사람들은 이 능력에 전율을 느끼기에는 무척이나 둔하다. 움직임이 있는 것, 그것은 세상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종종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명문과 단상 2022.10.02

사양 - 나오지의 유서

7 누나. 안 되겠어. 먼저 갑니다. 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걸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살고 싶은 사람만 살면 돼요. 인간에게는 살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을 권리도 있을 테죠. 나의 이런 생각은 전혀 새로울 게 없고 너무나 당연해서 그야말로 근원적인 사실인데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두려워하면서 분명하게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살고 싶은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씩씩하게 살아남아야 하고, 이는 멋진 일이며 인간의 명예라는 것도 틀림없이 여기에 있겠지만 죽는 것 또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라는 풀은 이 세상의 공기와 햇빛 속에서 살기 힘듭니다. 살아가는데 뭔가 한 가지, 결여되어 있습니다. 부족합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나로선 안간힘을 쓴 겁니다. 누나. 내겐 ..

명문과 단상 2022.09.16

사양 - 삶으로 부터 해방

5 그러던 어느날 아침, 나는 무서운 것을 보고 말았다. 어머니의 손이 부어 있었다. 이런 손은 어머니의 손이 아니다. 낯선 아주머니의 손이다. 내 어머니의 손은 훨씬 가늘고 자그마한 손이다. 내가 잘 아는 손. 부드러운 손. 귀여운 손. 그 손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신문에 폐하의 사진이 실린 모양인데, 한 번 더 보여주렴." 나는 신문의 그 부분을 어머니 얼굴 위에 펼쳐 들었다. "늙으셨구나." "아니에요, 사진이 안 좋아요. 지난번 사진에는 아주 젊고 쾌활해 보였어요. 오히려 이런 시대를 기뻐하시겠죠." "어째서?" "그야, 폐하도 이번에 해방이 되셨잖아요." 어머니는 쓸쓸히 웃으셨다. 그러고는 잠시 후, "울고 싶어도, 이제 눈물이 안나." 나는 지금 어머니가 행복한게 아닐까, 하고 문득..

명문과 단상 2022.09.14

사양 - 연애 요청 편지

4 6년 전 어느 날 제 가슴에 아스라이 무지개가 걸렸고 그건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무지개 빛깔은 점점 또렷해져서 저는 지금껏 한 번도 그걸 놓친 적이 없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맑은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이윽고 더 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무쪼록 그 분께 물어봐 주세요. 그분은 정말로 저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그야말로 비 개인 하늘의 무지개처럼 생각하신 걸까요? 그리고 까마득히 사라져 버렸노라고? 맨 처음 올린 편지에 제 가슴에 걸린 무지개에 대해 썼습니다만, 그 무지개는 반딧불, 혹은 별빛처럼 그렇게 고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토록 멀고 옅은 마음이었다면, 제가 이렇듯 괴로워하지 않고 서서히 당신을 잊을 수 ..

명문과 단상 202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