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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본질 (인생독본 - 톨스토이)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자신을 이 땅으로 보낸 존재가 누구인지, 그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고 적어도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길 바라 왔다. 종교는 그런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을 하나의 기원과 공통된 삶의 과제와 공통된 궁극의 목적을 가진 형제로 묶어주는 연결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서 등장했다. (마치니) 아무리 원치 않더라도 이 세상과 우리가 결합되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업과 교역과 예술과 지식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우리 처지의 동일성이, 세계에 대한 우리 관계의 동일성이 우리를 결합하고 있다. (톨스토이) 모든 종교의 본질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를 둘러싼 무한한 세계와 나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에 있다. 가장 숭고한 종교에서 가장 ..

명문과 단상 2022.10.24

어린이날이 필요해요

"어린이날 까지만 살고 죽어야지." 나는 엄마가 사준 골덴바지에 누런 똥을 묻힌 채, 5층 옥상에서 바닥을 내려 보며 생각했다. 나는 서동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다. 2학년 9반 3번인데 이름은 말할 수 없다. 아무래도 부끄러운 이야기를 할 것 같으니 비밀로 해야겠다. 한 달 전인가, 상철이와 비석 치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고려 속셈학원에 데려갔다. 무슨 속셈을 배우는 걸까? 사람을 속이는 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전문 학원까지 다니면 악당이 돼버리는거 아닐까? 무섭지만 왠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원장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강아지, 고양이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며, 몇 개인지 맞혀보라고 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며 자신 있게 답했다. 벌써 2학년인 내게는 너무 쉬운 문제였다. 그런데 선생님과 ..

에세이 2022.10.19

패배를 인정합니다

2022년 10월 10일 (쌀쌀한 비, 마음 우울) S/W 자격시험 최종 탈락. 보기 좋게 실패했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패배라 오히려 홀가분 한 기분이 들어.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어.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기." 내게도 행운이 있는지 시험해보았어. 지나간 모든 성취는 나를 갈아 넣는 노력이 필요했고, 목표 달성 후에는 허무함만 몰려왔어서, 이번만큼은 일상의 행복과 결과를 함께 달성하고 싶었어. 방긋 웃는 여유를 유지한 채 말이야. 하지만 역시 망상에 불과했지. 세상은 단칼에 "안돼. 그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나를 수렁으로 던지려 해. 그래. 나도 알아. 모든 사람이 자기를 뛰어넘으려 노력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데, 나처럼 설렁설렁해서는 무..

편린 2022.10.10

믿어서 행복에 도달한다

죽음을 이웃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보다도, 한 송이 꽃의 미소가 더 몸에 사무친다. 우리는 지금, 말하지면 아스라한 꽃향기에 이끌려 정체 모를 큰 배에 실려 하늘의 항로를 따라 되는데로 몸을 맡긴 채 나아가고 있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그 배가 어느 섬에 다다를지, 그건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항해를 믿어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은 이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할 열쇠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죽은 자는 완성되고, 산 자는 출범하는 배의 갑판 위에 서서 죽은 자에게 합장한다. 배는 스르르 바닷가에서 멀어진다 (다자이 오사무 - 판도라의 상자) 마음을 다해서 거짓없이 하루를 살고 싶다.

명문과 단상 2022.10.05

오롯이 버텨야 할 때

여행을 잘하는 사람은 생활에서도 절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여행이 서투른 사람이 여행하는 동안 가장 쩔쩔맬 때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머무는 시간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생에서 몇 시간 동안 '내려와 있는' 상태이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차 안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그래도 끝내 견디지 못해 차에서 내려 자기 힘으로 가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소위 '여행을 잘하는' 사람은 차를 타고 있는 동안, 즐긴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간 동안 마음을 비울 수는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굉장한 말로 표현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능력이다. 사람들은 이 능력에 전율을 느끼기에는 무척이나 둔하다. 움직임이 있는 것, 그것은 세상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종종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명문과 단상 2022.10.02

시험 준비의 명약 정신승리 (뇌의 오류)

2022년 9월 26일 맑음 (정신상태 맑음, 콧물 있음) 오랜 친구에게 비굴한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S/W 자격시험 기출문제 있어? ^^;" 아, 사람이 몰리면 품격이고 자존심이고 사라진다더니, 내가 그렇게 비웃던 중국인 수험생처럼 시험후기를 찾아 헤매고 있구나. 이런 비굴함은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 신님, 동물과 식물,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나의 파멸을 원하는 듯, 나는 지난번 시험에 떨어져 버렸다. 그것도 얼빵한 중학생이나 할 초보적인 실수(차마 적기도 부끄러운)를 해서 3개월의 노력을 날려버렸다. 나는 안다. 이런 대 실패뒤의 도전은 허무하게 끝난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망하는 흐름 위에 있어서 정석으로는 합격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

편린 2022.09.26

내 세계를 형성하련다

2022년 9월 21일 맑음 (정신상태 맑음, 감기 기운 있음) 일기를 틈틈이 쓰기로 했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 아침 주말에 뭐할까 고민하다 습관처럼 전시회를 찾아봤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전시회나 미술관을 많이 갔지만 별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시간 때우기 위해 작품 주변을 서성였을 뿐 감동을 받거나 여운이 남진 않았으니까. 그 이유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나만의 세계가 없어서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 확인하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작품에도 몰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세계를 만드는 목적이 작품 감상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것보단 내 속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는 어떤 세계를 펼치려 하나? 생각나는 키워드를 노트에 적어 ..

편린 2022.09.21

사양 - 나오지의 유서

7 누나. 안 되겠어. 먼저 갑니다. 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걸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살고 싶은 사람만 살면 돼요. 인간에게는 살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을 권리도 있을 테죠. 나의 이런 생각은 전혀 새로울 게 없고 너무나 당연해서 그야말로 근원적인 사실인데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두려워하면서 분명하게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살고 싶은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씩씩하게 살아남아야 하고, 이는 멋진 일이며 인간의 명예라는 것도 틀림없이 여기에 있겠지만 죽는 것 또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라는 풀은 이 세상의 공기와 햇빛 속에서 살기 힘듭니다. 살아가는데 뭔가 한 가지, 결여되어 있습니다. 부족합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나로선 안간힘을 쓴 겁니다. 누나. 내겐 ..

명문과 단상 2022.09.16

사양 - 삶으로 부터 해방

5 그러던 어느날 아침, 나는 무서운 것을 보고 말았다. 어머니의 손이 부어 있었다. 이런 손은 어머니의 손이 아니다. 낯선 아주머니의 손이다. 내 어머니의 손은 훨씬 가늘고 자그마한 손이다. 내가 잘 아는 손. 부드러운 손. 귀여운 손. 그 손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신문에 폐하의 사진이 실린 모양인데, 한 번 더 보여주렴." 나는 신문의 그 부분을 어머니 얼굴 위에 펼쳐 들었다. "늙으셨구나." "아니에요, 사진이 안 좋아요. 지난번 사진에는 아주 젊고 쾌활해 보였어요. 오히려 이런 시대를 기뻐하시겠죠." "어째서?" "그야, 폐하도 이번에 해방이 되셨잖아요." 어머니는 쓸쓸히 웃으셨다. 그러고는 잠시 후, "울고 싶어도, 이제 눈물이 안나." 나는 지금 어머니가 행복한게 아닐까, 하고 문득..

명문과 단상 2022.09.14

사양 - 연애 요청 편지

4 6년 전 어느 날 제 가슴에 아스라이 무지개가 걸렸고 그건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무지개 빛깔은 점점 또렷해져서 저는 지금껏 한 번도 그걸 놓친 적이 없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간 맑은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이윽고 더 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무쪼록 그 분께 물어봐 주세요. 그분은 정말로 저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그야말로 비 개인 하늘의 무지개처럼 생각하신 걸까요? 그리고 까마득히 사라져 버렸노라고? 맨 처음 올린 편지에 제 가슴에 걸린 무지개에 대해 썼습니다만, 그 무지개는 반딧불, 혹은 별빛처럼 그렇게 고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토록 멀고 옅은 마음이었다면, 제가 이렇듯 괴로워하지 않고 서서히 당신을 잊을 수 ..

명문과 단상 2022.09.13